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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40대 중반에 내가 15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이유..(#1)

by 박하향기78 2024. 7. 7.

 

●목차

40대 중반에 내가 15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이유..(#1)

20대 때 했던 미용에 다시 도전하다.

준비하지 않은 미래 덜컥해 버린 퇴사. 40대 퇴사 후 현실

 

자그마치 15년을 몸담고 있던 회사였다..

하는 일은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고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능이 되어있었기에 일은 무섭지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건 나는 가족회사를 다녔다.(이게 처음부터가 잘못된 일이라는 걸 15년 뒤에 알게 되었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사장님이시고 나는 소위말하면 사장딸.. 남들급은 얼마나 편하냐고 눈치 안 보고 일도 덜할 거 아니었냐

하지만

현실은... 가족이니까 더 했어야 했고.. 회사에서는 가족 집에서는 사원.. 그냥 하루종일 일이라는 틀에 박혀 살았던 거 같다. 이제와 이야기하지만 15년 동안 급여인상은 3번. 내 나이에 이경력에 너무 적은 급여를 받고 일을 했던 거였다.

어느 날.. 가슴통증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는 진단이 나왔고.. 나의 가슴통증은 더 심해져 갔다.

이걸 지켜보던 지인이 하는 말.."언니는 육체적인 증상이 아닌 거 같아.. 언니.. 조심스럽지만 저 병원을 가보는 게 어때?"           

 

.. 내 발로 찾아간 첫 정신과.. 심각한 우울증이 왔고 공황장애 초기증상이라고..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에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마음을 다 털어놔서 기분이 좋았다. 내 사정을 모르는 제삼자에게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때뿐.. 약에 의지하는 내가 싫기도 했고.. 근본적인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대 나의 모든 이유는 냉랭하신 아버지 때문이었으니.. 대화시도도 나에겐 큰 용기였음을..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한 냉랭함

난 거기서 무너졌던 거 같다.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사람인 걸 알기에 마음다짐이 무너졌던 거였다.

이대로는 살 수가 없을 거 같아서 내 할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20대 때 했던 미용에 다시 도전하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얼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다. 20대 때 엄마의 권유? 꼬드김으로 들어갔던 아버지회사를 가기 전에 내가 했던 미용사일.. 을 다시 하고 싶었다. 

손으로 만지고 만드는 걸 너무 좋아했던 나에게 정말 잘 맞았던 직업.. 처음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곳을 알아보았다.

개인학원보다는 분점이 많은 유명 학원으로..(이유는 나중의 취업을 위한??)

올댓뷰티 학원을 11시간 근무 후에도 저녁 타임으로 정말 열심히 다녔다.
(전국에 지점이 다 있는 체계적인 학원. https://www.allthat-beauty.com

본인주소에서 젤 가까운 점으로 검색하여 상담받을 것. 본인은 몰라서 대구로 전화까지 했음 ㅎㅎㅎ)

 

올댓뷰티아카데미학원

결과로 증명하는 올댓뷰티미용학원, 헤어, 메이크업, 네일, 피부미용, 헤어, 이용 국가자격증, 미용입시반, 취업&창업 전문컨설팅까지

allthat-beauty.com

 

하지만 나도 예전의 체력이 아니었던 거였다. 정말 피곤해서 다음날 일을 못할 정도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아버지께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원체 미운털이 많이 박힌 딸이어서 그런가. 퇴사요청은 한 번에 받아들여졌다. 하하.. 여기서 오는 허탈감이란..

그래도 좀 잡아줄 주 알았는데.. 모든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그 뒤 내 할 일 정리를 열심히 하고  학원을 열심히 다닐 생각만을 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역시난 나는 미용일이 손에 맞았다. 즐겁게 시험준비도 하고 뭔가 이뤄내는 나 자신이 뿌듯하기만 했다.                                처음은 떨어질 생각으로 본 자격증시험(아.. 난 20대 때 자격증을 따지 못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3점 차이로 떨어져서 아깝기는 했지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열심히 다녔던 거 같다. 
우선 벌이는 실업급여가 되었다. 당시 사업체가 2개였던 터라 나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가족기업일 때 자녀에겐 고용보험이 적용이 안된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려서.. 참 더러븐 세상이다.
아침 7시 반부터 출근해서 진짜 일은 일대로 했는데 참.. 얼마나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그런 제도가 있었을까?

구분                          동거여부                                  고용보험
배우자                       무관                                        미적용
형제 자녀 등              동거                                        미적용
                                  비동거                                     적용

여하튼 나는 다행히 실업급여를 7개월 동안 받을 수 있는 즐거운 마음에 앞으로 다가올 불안감을 모른 채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지 않았다. 내게 돌봐줘야 할 누군가가 생겨버렸다;;;
가족일원이 아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시집가서 이쁜 아들을 낳은 내 동생이 아파서 학원을 포기했어야 했다.

그렇게 조카육아와 아픈 동생을 돌봐주며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나는 이제 서서히 두려움에 불안해하고 있다.

 

준비하지 않은 미래 덜컥해 버린 퇴사. 40대 퇴사 후 현실

그래도 숨통을 좀 쉬며 살 수 있었던 건 실업급여가 있어서였다.
퇴사를 준비하고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던 점은 나의 정말 큰 불찰이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모바일 어플을 깔아도 신청이 가능하다.( www.ei.go.kr

학원만 다닐 생각만 했었던 내가 너무 못나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잘못했으니 그 몫은 내가 감당해야지.

하루하루 놀 수만은 없어서 미용 스페어 일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정말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자격증을 아직 따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지금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20-30대로 이루어져서 나 같은 40대는 부리기 힘들다는 내용으로 하나같이 다 퇴짜를 맞았다. 이러니 내 꿈도 좌절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막막해졌다.
왜 그렇게 급하게 퇴사를 했을까.. 또 나 자신을 채찍질해보기도 하고 울면서 탓하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이렇게는 있을 수가 없어서 살길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나였기에 처음엔 블로그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했다.
지금 이 또한 여러 가지의 글과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남들이 사는 세계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게 투성이다.
저들은 진짜 매월 저렇게 수익을 벌면서 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면서..

머리가 복잡한 날은 글을 써보기로 한다. 가끔 조카의 사진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좋은 날을 꿈꾼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