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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에 내가 15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이유..(#1)
20대 때 했던 미용에 다시 도전하다.
준비하지 않은 미래 덜컥해 버린 퇴사. 40대 퇴사 후 현실
자그마치 15년을 몸담고 있던 회사였다..
하는 일은 눈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고 (그렇다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능이 되어있었기에 일은 무섭지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건 나는 가족회사를 다녔다.(이게 처음부터가 잘못된 일이라는 걸 15년 뒤에 알게 되었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사장님이시고 나는 소위말하면 사장딸.. 남들급은 얼마나 편하냐고 눈치 안 보고 일도 덜할 거 아니었냐
하지만
현실은... 가족이니까 더 했어야 했고.. 회사에서는 가족 집에서는 사원.. 그냥 하루종일 일이라는 틀에 박혀 살았던 거 같다. 이제와 이야기하지만 15년 동안 급여인상은 3번. 내 나이에 이경력에 너무 적은 급여를 받고 일을 했던 거였다.
어느 날.. 가슴통증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아무 이상이 없는 진단이 나왔고.. 나의 가슴통증은 더 심해져 갔다.
이걸 지켜보던 지인이 하는 말.."언니는 육체적인 증상이 아닌 거 같아.. 언니.. 조심스럽지만 저 병원을 가보는 게 어때?"
.. 내 발로 찾아간 첫 정신과.. 심각한 우울증이 왔고 공황장애 초기증상이라고.. 손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에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마음을 다 털어놔서 기분이 좋았다. 내 사정을 모르는 제삼자에게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때뿐.. 약에 의지하는 내가 싫기도 했고.. 근본적인 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다. 대 나의 모든 이유는 냉랭하신 아버지 때문이었으니.. 대화시도도 나에겐 큰 용기였음을..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한 냉랭함
난 거기서 무너졌던 거 같다.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사람인 걸 알기에 마음다짐이 무너졌던 거였다.
이대로는 살 수가 없을 거 같아서 내 할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20대 때 했던 미용에 다시 도전하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무얼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다. 20대 때 엄마의 권유? 꼬드김으로 들어갔던 아버지회사를 가기 전에 내가 했던 미용사일.. 을 다시 하고 싶었다.
손으로 만지고 만드는 걸 너무 좋아했던 나에게 정말 잘 맞았던 직업.. 처음 학원을 알아보기 위해 많은 곳을 알아보았다.
개인학원보다는 분점이 많은 유명 학원으로..(이유는 나중의 취업을 위한??)
올댓뷰티 학원을 11시간 근무 후에도 저녁 타임으로 정말 열심히 다녔다.
(전국에 지점이 다 있는 체계적인 학원. https://www.allthat-beauty.com
본인주소에서 젤 가까운 점으로 검색하여 상담받을 것. 본인은 몰라서 대구로 전화까지 했음 ㅎㅎㅎ)
하지만 나도 예전의 체력이 아니었던 거였다. 정말 피곤해서 다음날 일을 못할 정도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아버지께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원체 미운털이 많이 박힌 딸이어서 그런가. 퇴사요청은 한 번에 받아들여졌다. 하하.. 여기서 오는 허탈감이란..
그래도 좀 잡아줄 주 알았는데.. 모든 정나미가 떨어진 나는 그 뒤 내 할 일 정리를 열심히 하고 학원을 열심히 다닐 생각만을 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역시난 나는 미용일이 손에 맞았다. 즐겁게 시험준비도 하고 뭔가 이뤄내는 나 자신이 뿌듯하기만 했다. 처음은 떨어질 생각으로 본 자격증시험(아.. 난 20대 때 자격증을 따지 못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3점 차이로 떨어져서 아깝기는 했지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열심히 다녔던 거 같다.
우선 벌이는 실업급여가 되었다. 당시 사업체가 2개였던 터라 나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가족기업일 때 자녀에겐 고용보험이 적용이 안된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려서.. 참 더러븐 세상이다.
아침 7시 반부터 출근해서 진짜 일은 일대로 했는데 참.. 얼마나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그런 제도가 있었을까?
구분 동거여부 고용보험
배우자 무관 미적용
형제 자녀 등 동거 미적용
비동거 적용
여하튼 나는 다행히 실업급여를 7개월 동안 받을 수 있는 즐거운 마음에 앞으로 다가올 불안감을 모른 채
열심히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지 않았다. 내게 돌봐줘야 할 누군가가 생겨버렸다;;;
가족일원이 아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시집가서 이쁜 아들을 낳은 내 동생이 아파서 학원을 포기했어야 했다.
그렇게 조카육아와 아픈 동생을 돌봐주며 7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나는 이제 서서히 두려움에 불안해하고 있다.
준비하지 않은 미래 덜컥해 버린 퇴사. 40대 퇴사 후 현실
그래도 숨통을 좀 쉬며 살 수 있었던 건 실업급여가 있어서였다.
퇴사를 준비하고 앞날을 생각하지 않았던 점은 나의 정말 큰 불찰이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모바일 어플을 깔아도 신청이 가능하다.( www.ei.go.kr)
학원만 다닐 생각만 했었던 내가 너무 못나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잘못했으니 그 몫은 내가 감당해야지.
하루하루 놀 수만은 없어서 미용 스페어 일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정말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자격증을 아직 따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고, 지금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20-30대로 이루어져서 나 같은 40대는 부리기 힘들다는 내용으로 하나같이 다 퇴짜를 맞았다. 이러니 내 꿈도 좌절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막막해졌다.
왜 그렇게 급하게 퇴사를 했을까.. 또 나 자신을 채찍질해보기도 하고 울면서 탓하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이렇게는 있을 수가 없어서 살길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나였기에 처음엔 블로그를 활성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했다.
지금 이 또한 여러 가지의 글과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남들이 사는 세계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은 모르는 게 투성이다.
저들은 진짜 매월 저렇게 수익을 벌면서 살고 있는 게 맞는 걸까? 하면서..
머리가 복잡한 날은 글을 써보기로 한다. 가끔 조카의 사진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좋은 날을 꿈꾼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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